우리시대 최고의 순수 :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수 없다.

나는 그가 왜 자살의 길을 택해야만 했는지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옥죄어 오는 수사망, 떨어지는 명예,
그리고 자신이 평생의 삶을 통해 주장해왔던 청렴한 모습의 손상...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 혹독한 5공치하에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고생고생해가면서도 품지 않았던 생각들을 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런 불의의 세력들이 주는 수만개의 고난보다
자신의 양심에 위배되는 터럭만한 오점이
자신의 존재 이유가 그리고 삶의 원동력이 약자편에 서는데 있었던 그에게는
더욱더 컸었나보다.

외신기자의 인터뷰를 보았다.
서양에서는 자살을 끝까지 견뎌내지못하고
도피의 한 방법으로 보아 수치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인도적으로나 기독교윤리로나 자살은 썩 정당화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비난할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그런 상황에 놓여있어보지 않았기때문이다.

사실, 그런 극심한 절망과 실망의 상황에서
자신의 온 삶이 부정될만한 위기의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았을때
글쎄... 썩 자신이 없다.

그런면에서 전대갈의 코멘트는 의미심장하다.
조금더 꿋꿋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그의 말...
맞다.
전대갈은 애시당초 그런 양심의 프레임자체가 없는것이다!
수백만을 죽여놓고도 자신을 긍정할수 있는 그 힘!

자신은 시대적 상황, 시류에 따라 그렇게 된것이지
특별히 자신이 이세상에 있어서는 안될 존재라던가
악마와 같은 존재,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것은 사는게 아니다.
그냥 연명이다...
그의 잠재의식속에서는 그가 죽인 수백만의 사람들의 절규로 가득차있다.
그에게는 사는게 더 고통일수도 있다.
그게 벌일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언어와 개념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 그 언어와 개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어떤 시대에 어떤 상황에서 얘기하느냐
그리고 누가 얘기하느냐 누구한테 얘기하는것이냐에 따라
변하게 되어있다.

세상의 모든 언어와 개념은 그저 표상일뿐이다.
실제 무언가를 가르키기 위한 표지판에 불과할뿐이고,
실제 무언가는 저어기 어디에 있고
그것은 주어진 개념을 오직 진정한 의도를 통해 받아들일 때만
제대로 받아들여지는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털어서 먼지가 안나올리가 없다.
누군가는, 그래도 그 액수가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비교도 안되는 숫자라고 하면서 위로를 하기도 한다

뇌물...
뇌물이라고 한다면 뇌물이라고도 할수 있을지 모른다.
어쨋든 기업가의 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집에 들어와있었던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의 삶을 통한 그의 진의를 봐야한다.
그가 약자의 편에 서서 국민을 위해 살아왔음을
그의 온 삶을 통해 보여주지 않았는가!

보장된 법조계의 삶을 저버리고
그는 양심을 따라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인생을 바쳤다.
그는 그게 그의 삶의 목표이자 이유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가 애시당초 돈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는 자살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순수했기때문에 하얀 백지장에 터럭하나 언지기가 두려웠던것이다.

법정 싸움을 계속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진의는 차치하고라도 이전투구가 될것이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세상의 여러 굴절된 언어에 의해서 자신이 희석될것이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는 그렇게 자신과 주변 사람을 지켰다.
자살의 시비를 떠나서 우리의 각박하고 야박한 현실속에서
이렇게 순수하고도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가장 높은 권좌까지 오르게 된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를 대통령으로 삼을수 있었던게 자랑스럽다.




by 옹크 | 2009/05/30 05:46 | 短想 | 트랙백 | 덧글(0)

만화의 위대함

만화의 힘은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데서 온다.

책.. 물론 한번빠지면 손을 뗄수 없을만큼 흥미진진한 책도 있겠지만,
책이 주는 첫인상은 만화가 주는 첫인상과 비교할수 없다.

만화.. 아주 만만하다.
어디를 펴더라도 읽어 내려갈수 있을것 같다.
읽는이를 심각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분석적 사고력 따윈 생각나지도 않는다.

그리고 스물스물 우리곁으로 다가오고
긴 시간을 놓고 봤을때
의식해서 책을 접한 시간보다
야금야금 무의식적으로 만화를 보는 시간이 많다는 걸 알게된다.

만화 win..


<교훈>
우린 일을 할때 의식적으로 그래 오늘까진 이일을 마쳐야되. 라고 하고 일할때가 많고,
일에 들어가려면 한 1시간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가야 스토리가 잡힌다.

반면 취미분야 나의 예를들면 기타관련 정보 수집. 노래기사 같은것..
어디를 펴나, 어디서부터 하든 중요치 않다. 쪼금씩 쪼금씩..
그리고 지식이 풍부해지고 실력이 나도 모르게 늘어있다.

<적용>
일을 놀듯이 해라.

<실제>
놀기만 하고 있다.

<반박>
일은 원래 정신 차리고 해야하니까, 돈받고 할수 있는거다.
취미하는것 처럼 쉬웠으면 일이 아니었겠지.

<결론>
없다.

by 옹크 | 2009/03/28 03:22 | 트랙백 | 덧글(0)

오랜만에 글질

내 이글루에 글을 쓴지도 정말 오랜만인듯 하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걸까.
책도 안읽고 교양없이 살아온걸까.
Input이 없고서는 변화란 있을수 없다..라고 하던 어느 친구의 충고는 잊은지 오래고
그렇다고 논문을 많이 읽은것도 아닌데
참 시간은 알수 없게 빨리 흐른다.


슬이가 빌려준 책 Don't Sweat the Small Stuff 라는 책을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언젠가 올 '어떤날'을 위해 살고 있고
그 어떤날을 위해 리허설 하듯이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만끽할수 있는것은 현재일뿐인데..

정말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Power of Now라는 책을 읽을때까지만 해도
뭔가 깨달은듯한 느낌이었는데..
언제 또 다시 세상사의 노예가 되었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산 송장으로 살고 있었다.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면 바보사와 그 일행들은 사과를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고, 이제 그런 삶이 지겨워 영원한 삶을 고사하고
인간의 몸을 찾고자 한다.
내가 바로 그 해골들처럼 살고 있다.
현재 주어진것들을 즐기지 못하고
엄한것에 신경을 쏟으며
그 와중에 소중한 인생의 시간은 흘러가고
젊음은 지나나고
소중한 사람들은 떠나가고..

아차하는 순간 세상의 쳇바퀴에 편입되고 만다.
이제 느긋한 사람이 되련다.
한 순간순간을 Appreciate하는 사람이 되련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한다.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by 옹크 | 2009/03/27 13:01 | 短想 | 트랙백 | 덧글(1)

남을 이해한다는 것

남을 이해한다는게 당췌 가능하기나 한걸까?

니가 내가 아닌데 어떻게 이해가 가능하단 말인가?
모든 사람에게 남의 일은 절대 자기일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게 바라는건 순억지다.

세상에서 이해심이 많다고 일컬음을 받는 사람은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아무리 자기와 다른 사고 방식을 가졌더라도
나라면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것 같은데..라고 생각될때라도,
예를들어 니가 처음부터 저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살아왔다손 치면
닌들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꺼라는 장담을 할수 있니?

그러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것과 포기해버린다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 제 포기했어. 지 멋대로 하라고해.
쟤는 내말을 들어먹질 않어. 걱정해줘봐야 소요없어.
이렇게 생각하는게 포기하는거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거는 무엇을 뜻할까

by 옹크 | 2008/12/21 17:05 | 短想 | 트랙백 | 덧글(2)

드러내놓기

세상에 들어내놓기..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는 경우였드래도 그걸 건전하게 세상에 드러내놓고
세상에 평가를 받았을때가 더 발전이 있었던것 같다.

어떤 생각이던지 속으로 꿍하게 생각하고 있다거나
부끄러워서 얘기하지 못한것들
또는 속으로 남들을 비하하거나 부정한것들
말하기 귀찮아서 내가 참아버리는 경우들..

세상의 빛을 쪼인다는것은 중요한것 같다.
"정직"이라는 미덕이 그래서 중요한것이고..
세상에 정직하게 부딪힐때만이
나를 바꿀수 있는, 변화시킬수 있는 반작용이 메아리쳐오는듯하다.

그리고 사실, 처음에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는 경우..." 라고 했지만
잘못생각한다..라는 건 애시당초 없는것 같다.
내가 그런 상황에서 나였기때문에 그런생각을 한게 아닌가?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것 만으로 그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약해질 필요없다. 우리가 무섭게 생각하는 그네들도 모두 약한 존재이다.

우리는 매순간 옳다. 우리가 그렇게 지음받았기때문이다.
하지만 그 매순간 매순간 앞으로도 계속 옳을거라 생각하는건 옳지 않다.
이건 어려운 문제다. 어렵다는건 표현하기 어렵다는것이다.
이런 진술에는 항상 이런 질문이 따른다.
살인을 해놓고도 그럼 욿은거냐..
그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질문을 회피하는게 아니다.
그렇게 흔히들 얘기하는 그런 옳고 그름과는 다른 얘기라는 것이다.

언어는 실체를 표현하는 하나의 표지판이다.
모든 실체가 언어로 표현될수 있는것도 아니며
언어로 표현될수 있는것도 실체와 일대일 대응한다던지
정확히 어떤 것을 콕 집어서 표현하는것이 아닌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매순간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옳다.
사회적으로 보면 살인은 옳지 못하다.

여기서 둘을 가르기위한 중요한 개념은 '매순간' 과 '개인' 이다.
시간은 환영이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합친 시공(time-space)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그에따르면 시간은 공간과 같은 다른 하나의 차원이다.
다른점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마음대로 갈수 있지만
지금에서 미래로, 지금에서 과거로는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스티븐 호킹은 우리는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 시간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인식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모든 물리법칙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설명된다.
우리가 그렇게밖에 볼수 밖에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개념은 진리에 있어서 우리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투명한건물을 하늘에서 보면 1층에 있는 사람과 10층에 있는 사람이 겹쳐보이듯이
한가지 차원에서만 사물을 보면 그 차이를 알지 못할수 있다.
물론 옆에서 보면 1층과 10층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옳다의 개념은 시간과 개개인의 차원에 따라 달라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개인은 각자 '소우주'라고 불릴정도로 고유한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1억명이 있다고 하면 1억개의 다른 차원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각 개인마다 개인의 현재가 있다.
우리가 모두 모여 같은 공간안에 서로 교류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리고 공생하기 위해 어떤 규칙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서로가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재단할 수단은 없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지어진대로 살아가고
느끼고 생각하며 반응하며 살아간다.

나도 우리의 의식이 어떤거고,
또 남들과 같이 산다는게 어떤거고
또 이세상을 살아간다는게 어떤건지
알수가 없다.

오직 내가 관심을 가질수 있고,
결정할수 있는것은
지금 어떻게 반응/행동 하느냐이다.

어떤것을 이해했던, 이해하지 못했던,
또는 오해하고 있던, 감정이 그렇게 느끼던
머리로 다릏게 생각하던,
누가 그렇게 시켰던, 자의로 한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무언가를 한다.

아무도 증명하거나 밝혀낼수 없는것은
우리의 자유의지가 환상인지 아닌지 일것이다.
우리가 결정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결정하도록 조건지음 받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유유히 흘러가는 인생의 그냥 구경꾼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둘다 맞는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결정한다는게 바로 그런건지도 모른다.

by 옹크 | 2008/12/14 03:41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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